나 자신이 이미지보다는 텍스트에 더 민감하게 반응하는 인간이라는 걸 익히 알고는 있지만, 새삼 뼈저리게 느낄 때가 바로 미술관에서 그림을 볼 때다. 미술관이란 그림을 보러 온 곳일진대, 나는 그림보다 그 옆에 붙어있는 설명 패널을 죽어라 읽어대곤 한다. 그러나 어쩌겠는가, 그 설명을 통해서 이 그림이 어떤 맥락에서 그려졌고 어떤 시기, 어떤 상황을 묘사하고 있는지를 알고 나서야 그림 전체가 제대로 된 의미를 가지고 내게 다가오니 말이다. 이건 내가 초상화나 풍경화는 즐기되 추상화로 넘어가면 맥을 못 추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래서 이 책, 나에게는 더 반갑다. 조선시대의 풍속화 23점, 그것도 내 주요 관심분야인 음식과 관련된 풍경을 다룬 그림들만 모아서 그 그림을 통해 당시의 사회와 풍속을 들여다보고자 하는 시도인 이 책, 그 시도만으로도 반가울진대, 저자는 이를 단순히 새로운 시도로 끝낸 것이 아니라 상당히 만족스러운 결과물을 내놓았다. 물론 이 책에서 다루는 그림들은 ‘음식이 있는 풍경’을 그렸을 뿐 음식 자체를 묘사한 것이 아니므로, 이 그림들을 통해 음식사(史) 그 자체를 복원하는 것은 다소 무리한 시도다. 그러나 저자가 머리말에서 말했듯 자세히 들여다보면 짐작은 가능하며, 그 짐작을 기존에 알려져 있는 조선 음식의 상식과 결부시키면 서로 상승작용을 일으켜 조금 더 명확한 이미지를 잡아낼 수 있다.
그림과 문헌 사이를 수없이 오가야 했을, 읽는 이로서는 반갑지만 쓰는 이로서는 참으로 중노동이었을 노력 덕분에, 저자는 남아있는 그림을 통해서 조선시대의 음식 문화만이 아니라 음식과 관련된 생활상을 아주 성공적으로, 섬세하게 묘사해내었다. 숭어찜에 막걸리 한 잔 곁들인 어부의 점심시간, 숯불에 구운 쇠고기에 술 한잔 마시려 바깥 추위를 무릅쓰고 한밤중에 모여앉은 양반님네들, 시집와 큰 상 받고 앉았지만 앞으로의 시집살이 생각에 얼굴은 밝지 않은 새색시의 모습까지. 우리의 이야기가 분명하지만 우리 머릿속에서 선명하게 잡히지 않았던 모습들이 빼어난 그림과 친절한 설명 덕분에 생생하게 그려진다.
그런 의미에서 ‘그림 속의 음식, 음식 속의 역사’라는 이 책의 제목은 더할 나위 없이 적절하다. 책의 전반적인 도판이나 지질도 책 내용 못지 않게 마음에 들었고, 나처럼 ‘그림눈’ 어두운 독자를 위해 그림 전체를 일단 한번 보여준 다음 세부만을 다시 따서 관련되는 내용 옆에 배치해준 친절함도 돋보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