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 제우스에게서 예쁜 암소를 빼앗아 온 헤라는 눈이 백 개나 달린 아르고스에게 주고 단단히 지키라고 명령한다. 사실 이 암소는 제우스의 연인이었던 이오가 변신한 것이었다. 헤라는 제우스와 이오가 자신을 속인 것에 화가 나서 둘을 갈라놓고자 했다. 이오를 영영 암소의 몸에 가둬두기 위해 그녀를 아르고스에게 맡긴 것이다. 아르고스는 눈이 백 개나 되어 잠을 잘 때도 항상 몇 개의 눈은 뜨고 있기 때문에 감시역으로는 제격이었다. 하지만 연인이 괴로워하는 모습에 마음이 달은 제우스는 꾀가 많은 헤르메스를 보내 아르고스의 목을 치고 이오를 구해내는데 성공한다. 이를 발견한 헤라는 죽은 아르고스의 쓸모 없어진 백 개의 눈을 자신이 사랑하는 새인 공작의 꼬리깃에 붙여 주었다.

 

 

 

어린 아이든 어른이든 동물원 나들이는 정말로 신나고 즐거운 경험입니다. 바위 위에 위풍당당하게 앉아 있는 호랑이도, 나뭇가지 사이로 요리조리 돌아다니는 원숭이도, 한쪽 다리로만 고고하게 서 있는 홍학 떼들도 신기하지만, 그 중에서도 감탄사가 절로 나오던 장면은 공작이 꼬리의 깃을 펼치던 장면입니다. 쥘부채처럼 접어놓았던 꼬리깃을 펼치던 순간, 날지도 못하고 볼품없던 파란새는 일순간 당당한 귀족-공작-이 됩니다. (꼬리깃은 꽁지깃이 맞는 표현이지만 이 글에서는 공작을 특별히 예우하여 꼬리깃으로 쓰겠습니다.)

 

공작-정확히는 숫공작-의 꼬리깃은 같은 종(種)뿐 아니라, 종이 다른 인간들에게서까지 감탄을 자아내게 할 정도로 아름답습니다. 하지만 꼬리깃이 아름답다는 사실을 제외하고는 공작은 그다지 내세울만한 것이 없습니다. 새이면서도 날지 못하며, 그렇다고 타조처럼 덩치가 크거나 빠르게 달릴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그렇기에 때로는 공작에게 있어 커다란 꼬리깃은 날지도 도망치지도 못하게 만드는 족쇄가 되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공작은 그 크고 무거운 꼬리깃에 왜 그토록 아름다운 무늬를 넣어 끌고 다니는 것일까요?

 

옛사람들은 공작의 꼬리깃에 깃든 무늬를 신화로 설명했습니다. 무늬가 얼핏 보아 눈동자를 닮았다는 사실에 착안하여, 헤라가 죽은 아르고스의 눈을 총애하는 새인 공작의 꼬리깃에 달아주었다는 것으로 말입니다. 하지만 과학은 이를 전혀 다른 방식으로 설명합니다. 공작의 무겁고 긴 꼬리깃은 진화의 산물이라고 말입니다.


 

 

진화(進化, evolution)라는 단어를 들으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인물은 다윈입니다. 다윈의 대표작이라고 알려진 ‘종의 기원’ 에서 다윈은 ‘자연선택’에 대해 자세히 설명합니다. 다윈에 따르면, 생명체에게 있어 변이는 매우 자연스럽고도 흔한 현상입니다. 여기서 궁금한 것은 어떤 변이는 지속되는데 반해 어떤 변이는 흔적도 없이 사라지느냐는 것입니다. 그 해답으로 다윈이 제시한 것이 바로 ‘자연선택’입니다. 생명체는 모두 ‘자연’이라는 하나의 환경 속에서 한정된 자원을 차지하기 위해 경쟁하는 존재들입니다. 따라서 어떤 변이가 자연 속에서 살아가는데 조금이라도 더 유리하다면 그 개체는 좀더 오래 살면서 좀더 많은 자손을 낳을 것이고, 자연 속에서 살아가는데 불리한 변이를 가진 개체는 그렇지 못할 것입니다.

 

 


이 차이는 초기에는 미미할지 모릅니다. 하지만 오랜 세월 같은 일이 반복된다면 변이의 자연 적응도에 따라 개체수의 차이는 크게 벌어질 것입니다. 그 와중에서도 또 다른 변이가 더해져서 오랜 시간이 지나면 애초에 같은 특성을 지녔던 개체들이 서로 공유하는 부분이 적어져 다른 종(種)으로 갈라지게 된다는 것이죠. 각 개체의 변이는 무시할 정도로 작겠지만, 아무리 작은 변이라도 수 백만 년, 수 천만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되풀이되다 보면 그 차이는 무시할 수 없을 만큼 커져 버리게 됩니다. 이로 인해 생물체들은 각자 처한 상황에 맞게 다양한 종으로 변이해 올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를 통해 우리는 사막과 극지방이라는 환경의 차이만큼 다르고, 또 각자 처한 상황에 꼭 맞게 진화된 낙타와 펭귄이라는 전혀 다른 생물체를 접하게 되는 것이랍니다. 작은 변이가 세월의 힘을 통해 종을 가를 만큼 커다란 변이로 증폭되는 과정에 대해서 자세히 설명한 책이 있습니다. 유명한 생물학자이자 작가, 리처드 도킨스가 쓴 ‘눈 먼 시계공(The Blind Watchmakers)’입니다.

 

 

 

하지만 위에서 말한 공작의 꼬리깃은 다윈이 제시한 자연선택 이론으로는 전혀 설명할 수 없습니다. 공작의 꼬리깃은 공작의 몸집에 비해 너무나도 크고 무겁기 때문에 행동을 제한합니다. 이 뿐 아니라 특유의 화려한 색채 덕에 적들의 눈에 뜨이기 쉬워 개체의 수명을 유지하는 데는 결코 도움이 되지 못합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공작이 이토록 눈에 잘 띄는 꼬리깃을 가지고도 종족을 유지하는 것이 현실입니다. 그렇다면 자연 선택을 넘어서는 진화의 원동력이 존재한다는 말이 됩니다. 그것이 바로 성 선택(sexual selection)입니다. 생물종이 유지되기 위해서는 개체 각각의 생존도 중요하지만, 또 하나 중요한 것은 자손의 번식입니다.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 라는 오래된 딜레마에서 생물학자들은 이렇게 해석합니다. “닭은 달걀이 자신을 다음 세대로 존속시키기 위해 선택한 수단”이라고요. 그런데 사람이나 공작처럼 유성생식을 하고, 암컷이 새끼를 낳는 종들의 수컷에게는 두 가지 과제가 주어집니다. 하나는 ‘생존하라’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자신의 유전자를 암컷이 받아들이게 하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때로 두 번째 명제는 첫 번째 것을 뛰어넘는 힘을 지닙니다. 첫 번째 명제만 충실하다면 개체 수는 한 마리에 머물겠지만, 두 번째 명제에 충실하면 어쩌면 수십 수백 수만의 자손들을 남길 수 있으니까요.

 

 

공작은 그 중에서도 두 번째 명제에 충실한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화려한 꼬리깃은 비록 개체 자체의 생존에는 도움이 되지 않을지 몰라도, 암컷을 유혹하고 자손을 남기는 데는 유리합니다. 숫공작의 화려한 꼬리깃은 수없이 많은 윗대 조상 중 한 조상 수컷의 꼬리깃에 나타났던 작은 변화의 결과로 보입니다. 이것이 암컷들의 눈에 띄어 이를 닮은 자손들이 점차 늘어났겠지요. 여기서 공작의 꼬리깃은 개체의 진화에 있어서 성 선택이 가지는 놀라운 효과를 설명하는데 유용한 것입니다. 하지만, 왜 하필 꼬리깃이었는지, 왜 하필 눈동자를 닮은 무늬였는지에 대해서는 설명할 수 없습니다. 그건 그야말로 무작위적인 것이니까요. 마찬가지로 성 선택은 특정 종의 수컷에게서 왜 암컷과는 판이하게 다른 특징이 나타나느냐를 설명해주기는 하지만, 왜 하필 뿔이나 볏이나 긴 이빨이어야 하는 지까지 설명하지는 못합니다. 그건 단지 최초의 변이가 우연히 그런 방향으로 일어났던 것뿐이죠.

 

또 하나 흥미로운 사실은 수컷에게서 일어나는 이런 특이한 변이들의 원인을 둘러싼 해석이 바뀌었다는 점입니다. 다윈은 ‘수컷은 유혹하고 암컷은 선택한다’라는 말을 들어 ‘암컷의 선택’ 쪽에 무게를 뒀습니다. 하지만 이후의 많은 학자들은 수컷의 특이한 변이의 원인에 대해서 '1인자가 되기 위한 수컷들끼리의 경쟁' 때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경쟁에서 우위를 점하기 위해 자신들만의 무기를 개발하는 과정에서 수컷만의 독특한 특징이 나타났다는 것이죠. 숫사슴의 큰 뿔, 수탉의 날카로운 발톱 같은 것을 생각하면 이 해석도 그럴 듯해 보입니다. 그러나 때로는 '수컷의 경쟁'만으로는 모든 것을 설명할 수는 없습니다. 숫공작의 화려한 꼬리깃이나 수컷 가시고기의 혼인색 같은 것을 '무기'라고 볼 수는 없으니까요. 분명히 암컷에게 더 잘 보이기 위한 것입니다. 즉, 이런 경우에는 진화적 원동력은 수컷끼리의 경쟁이라기보다는 '암컷의 선택'에 있습니다. 그래서 암수의 차이가 '수컷의 경쟁'에 의한 것인지, '암컷의 선택'에 의한 것인지에 대한 논란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최근의 생물학자들은 다시금 성 선택의 주도권을 암컷에게 돌려주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습니다. 맨 처음 다윈의 해석으로 다시 돌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재미있습니다.

 

 

이처럼 공작의 화려한 꼬리깃에는 유전자를 남기기 위해 노력하는 숫공작의 처절함이 숨어 있습니다. 그러고 보니 축 늘어진 긴 꼬리깃을 끌고 뒤뚱거리며 우리로 들어가는 공작의 뒷모습에서 왠지 모르게 쓸쓸함이 느껴지는 듯 하네요. 옛 사람들도 이런 처절함을 무심코 느꼈기에, 공작의 꼬리깃에서 별다른 죄도 없이 목이 잘린 아르고스의 이야기를 생각해냈던 건 아니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