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준의 뉴욕 책이 좋은 이유는 그 무엇에도 집착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는 어느 관광지에 기를 쓰고 달려가 본다거나 맛있는 음식을 기필코 먹어 보는 일에는 관심조차 없다. 그 틈새를 그는 간판을 들여다보거나 벽의 낙서를 보거나 사람들을 조용히 지켜보거나 감탄하거나 이야기를 듣는 걸로 메운다. 그가 궁금했던 건 살아가는 방법이었던 것 같다.
나는 그의 뉴욕 여행기 <네 멋대로 행복하라>에 나오는 장소 중에 할렘 125번가 레녹스 거리에 자리한 재즈 클럽 ‘레녹스 라운지’ 이야기가 제일 좋았다. 그곳은 누구나 무대에서 노래 부를 수 있는 곳인데, 작은 무대 앞 테이블에는 한 장의 종이가 놓여 있고 노래를 부르고 싶은 사람은 종이에 자신의 이름을 써 넣으면 된다. 그리고 자기 이름이 불리면 무대에 나가 노래를 부르는데, 그때 피아노와 드럼, 콘트라베이스 연주가 노래를 받쳐 준다.
박준이 그곳에서 만난 사람은 예순 넘은 구부정한 할머니였다. 거동이 불편한지 걷는 것마저 부자연스러운 그녀는 천천히 무대로 나가 노래를 불렀다. 그녀가 부른 노래의 곡명은 책에 나와 있지 않지만 나는 그 노래를 필시 그녀가 젊고 건강했을 때부터 좋아했던 곡이었을 거라고 짐작할 수 있다. 노래를 부를 때 그녀의 눈과 정신은 몸과 무대를 떠나 다른 곳을 보고 있었을 것이다.
이 사연은 나에게 화곡동의 허름한 노래방을 생각나게 했다. 그 노래방에서 노래를 부를 때면 40년 넘게 색소폰을 연주해 온 정갈한 할아버지가 나의 백코러스가 되어 주었고, 어쩌다 밤거리에 나서면 그 허름한 거리에 색소폰 소리가 달빛처럼 어둠 속에 뿌옇게 넘쳐흘렀었다. 뉴욕 이야기를 듣는데 ‘나의 거리’가 생각이 났다. 어쩌면 박준의 뉴욕 여행기는 우리가 적대적인 세계에 홀로 놓여 있는 존재가 아니란 걸 이런 식으로 알려 주는 것인지 모른다. 네 이야기가 내 이야기가 되고 그 이야기가 흘러 흘러 하나가 되고, 그리고 그 물을 우리가 다 같이 퍼먹는 방식으로.
박준은 <네 멋대로 행복하라>의 많은 부분을 뉴욕에 사는 이방인들의 인터뷰에 할애했다. 뉴욕에 사는 베트남인, 뉴욕에 사는 한국인, 뉴욕에 사는 일본인, 이탈리아인. 그 인터뷰 덕분에 나는 남의 시선보다는 나의 시선을 찾아내야 하는 도시, ‘대충, 살아야지.’하는 생각으론 살 수 없는 도시 뉴욕에 대해 많이 알게 되었다. 인터뷰 중에서도 특히 한국인 마종일 씨의 인터뷰가 가장 인상적이었다. 미술을 공부하기 위해 홀로 뉴욕에 온 그는 거의 빈손으로 왔기에 생활비와 학비를 벌기 위해 죽도록 일했고, 야근이 끝나고 나면 지친 몸으로 집 근처 학교에 가서 매일 밤 공 던지기 연습을 했다. 그리고 공을 던지면서 그는 이렇게 생각했다. “어떻게든 뚫고 나가자!”
이 책은 뉴요커들의 삶을 통해 ‘내 멋대로 행복하기가 얼마나 힘든가?’를 역설적으로 알려 주는 듯하다. 그러나 일단 내 멋대로 행복해지고 그 맛을 본 다음에는, 마치 한 여자를 세포까지 깊이 사랑해 본 사람처럼 결코 다른 식으론 살 수 없고 사랑과 열정 없이 대충 살기도 힘들다. 그러니 이 책을 다 읽은 다음에는 우린 한숨을 쉬며 우리 스스로에게 물어봐야 한다. “자, 내 방식으로 행복해질 준비가 되어있나? 그렇다면 레디 고(Ready go)!”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