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누구나 ‘여행’을 꿈꾼다. 그 여행은 단순히 떠나고 돌아오는 과정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그것은 자신이 경험하지 못한 또 다른 일상으로의 일탈이자 자신 안에 숨겨진 다른 삶을 추구하고픈 욕망이다. 이런 여행에 대한 갈망은 완벽함으로 무장되어 있던 사람에게 더 갑작스레 찾아올 수도 있다. 자신조차 인식하지 못했던 자기 자신과 마주하는 순간, 그 순간이 찾아오면 우리는 우리 모두가 평범한 인간임을 깨달아버리고 그 동안 자신이 알지 못했던 자신 아래 감춰진 비밀에 대해 알고 싶어진다. 그리고 떠나는 것이다. 낯선 익숙함을 찾아서.
그 순간은 아주 갑작스레 작은 떨림으로 찾아오기도 한다. 그레고리우스에게도 그 순간은 우연한 섬광과 같았다. 자살을 시도하는 포르투갈 여자를 만나고 학교에서 벗어나 헌책방에서 이해할 수 없는 언어로 된 한 남자의 글을 마주하는 순간, 50년 넘게 베른에 머물러 있던 그의 인생은 리스본으로 향하게 된다. 그레고리우스가 뒤쫓는 프라두의 일생은 여러 면에서 그레고리우스의 현실과 비슷하다. 자신과 비슷한 사유(思惟)를 좇는 사람을 시공을 초월해 만난다는 것, 바로 그 점이 그레고리우스에게 일탈을 감행하게 했고 이는 필히 또 다른 자신을 만나고픈 욕구의 일환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는 프라두의 일생을 추적하기 시작한다. 이는 단지 추적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프라두의 인생을 살아보고 그 안에서 새로운 화두를 만나게 되는 기회로 이어진다. 그것은 일종의 자아 찾기이며, 드러난 자신과 드러나지 않은 자신 사이의 차이에서 갈등하는 인간의 본연적 모습이다. 그리고 이는 프라두의 궁극적인 의문과도 일치한다. 여행을 계속하며 그레고리우스는 프라두의 일생을 통해 자신의 삶을 보게 되고 ‘인생은 우리가 사는 그것이 아니라 상상하는 그것이다’라고 결론짓는다.
하지만 이 결론이 그의 종착역은 아니다. 그는 그 결론과 함께 또 다른 내일로 접어들기 때문이다. 그것은 과거와 연결되어 있는 시간일 수도 있고 상상 속에만 있는 실제로는 비(非)존재하는 시간일 수도 있다. 그는 리스본 야간열차에서 잠시 하차했지만, 그가 본질을 향해 탄 야간열차는 아직도 알 수 없는 종착역을 향해 달리고 있다.
책을 읽는다는 것, 이는 얼마나 매력적인 행위인가. 이는 때로 우리의 일상을 송두리째 다른 곳으로 옮겨놓기도 한다. 우리가 책을 읽는 행위는 어느 정도 기차여행과 유사하다. 우린 때로 책 속에서 자각하며 묘한 흥분을 느끼고, 이는 그레고리우스와 프라두가 공통적으로 기차 안에서 느낀 흥분과도 같다. 그러니 한 권의 좋은 책을 만나는 것은 떠나는 동시 향수병에 걸리지만 또 다시 떠나지 않을 수 없게 하는 기차여행과도 같고 이는 우리의 인생과도 다름없다.
이 책 안에는 인간의 본질에 대한 깊은 사유로 가득하다. 그런 사유들은 독자를 책 속 세계와 함께 자신의 내면으로 이끌어간다. 우리는 살아보지 않은 인생에 대해 대답할 수는 없다. 하지만 그것을 느껴보며 자신의 인생에 대해 끊임없이 자각할 수는 있다. 일상에 대한 물음, 그리고 대답. 개인에게 그것은 각자의 몫으로 남게 되지만 이 책은 그 질문으로 향하는 걸음을 도와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