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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사회의 문화라는 것은, 그것이 어떠한 형태로 표창(表創)되던 그 시대를 살아간 사람들의 모습을 반영하기 마련이다. 한 세대가 겪어낸 삶의 질곡을 자양분으로 삼아 생장하고 진화하고, 또 다른 세대로 유전된다. 만화도 예외일 수 없다.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서는 이미 불과 20년 전 삶의 방식도 찾아보기 어렵지만, 지금 우리의 모습은 사실 그 당시의 아픔이 없었더라면 절대로 존재하지 않았을 모습이기도 하다.
지금으로부터 21년 전, 1987년 소위 민주화항쟁 이후 한국사회는 많은 부분에서 변모해 나갔다. 만화계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기존의 만화계는 대본소라는 독특한 유통망, 유명 만화가를 중심으로 한 도제식 제작으로 요약할 수 있다. 물론 박봉성, 이현세와 같은 작가들처럼 극적인 스토리와 감각적인 그림과 대사로 대중적인 인기를 얻으며 기존의 시스템을 더욱 대규모화하는 방식으로 발전해 나가기도 했지만, 또 다른 한쪽에서는 서서히 자신만의 색깔을 담아내는 새로운 부류의 만화가들이 등장하기 시작했고, 거기에는 박흥용, 이희재와 같은 이들이 있었다.
그리고 오세영이 있었다. 그는 마치 시대를 기록하는 다큐멘터리 작가와 같은 모습으로, 아주 담담히 우리의 주변세상을 그려나가기 시작했다. 어떠한 극적인 스토리도, 감각적인 대사도, 화려한 액션도 없었다. 그저 보이는 현상 그대로의 모습을 카메라로 담아내는 듯 조용한 작업이 진행되었다.
오세영의 <부자의 그림일기>는 1995년에 나온 그의 첫 단편만화집이다. 총 13편의 단편만화가 담겨있는데, 모두 1988년에서 1993년 사이에 발표된 작품으로 구성되어 있다. 정치적으로도 변화가 이루어지던 시대였던 만큼, 그동안 금기시되어온 불편했던 진실들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었고, 오세영 역시 당시 우리사회가 가졌던 응어리에 대한 기록을 시작한다. 그런데 그 기록의 방식이 매우 리얼리스틱하다.
‘고샅을 지키는 아이’에서 주민들이 모두 도회지로 떠나고 없는 한 마을의 소녀가 고샅을 지키며 밭일 나간 부모를 기다리는 모습은, 아무런 대사없이 3인칭 내레이션으로 처리되고, 아이의 모습을 부감하여 잡아낸 모습(13쪽)은 영략없이 지미짚 카메라의 이동으로 잡아낸 다큐멘터리를 보는 듯하다. 또 월북작가 안회남의 단편을 만화화한 ‘투계’를 보자. 주인공이 꿈속에서 막걸리를 막 마시려고 하는 장면, 실제로 사발 속의 막걸리가 흘러넘칠 것 같은 리얼한 묘사에다가, 창호문을 투과한 햇볕이 격자로 주인공의 전신에 뿌려지는 모습은 실로 놀랍다. 오세영의 만화는 마치 영화를 보듯 한 프레임이 회화적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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