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이즈 환자와의 사랑, ‘아주 조금 특별한 사랑’ 이야기를 아주 덤덤히 있는 그대로 만나다
한없이 투명에 가까운 블루

프랑스어 원서 <Pilules bleues>만화책이라는 것을 지독히도 싫어했던 내가 이 책을 집어들 수 있었던 것은 아무래도 흔히 생각해오던 만화책의 이미지와는 조금 다른 느낌의 책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만화라는 장르에 대한 인식이 조금씩은 완화되어 그 나름대로 의미를 가지고 있을 것이라는 열린 사고가 작용했기 때문일까. 또 하나는 이 책이 담고 있는 에이즈(AIDS)에 대한 메시지가 크게 다가왔기 때문일 것이다.

카티와 페테르스. 우연히 알게 된 두 남녀는 사랑에 빠지게 되는데, 카티는 이혼녀로 아들이 하나 있지만 그녀와 아들 모두 에이즈라는 병을 가지고 있다. 에이즈. 듣기만 해도 으스스 떨렸던 그런 기억은 이미 지났다. 물론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에이즈에 걸렸다면 나 역시 많이 당황하겠지만 흔히 생각하는 에이즈라는 병에 대한 강한 배척의 수준은 지났다는 말이다. 공기를 통해 감염될 수 있는 바이러스도 아니고 혈액으로 감염되는 것이며, 불치병이라고 알고 있지만 개중에는 치료를 통해서 완치가 되는 경우도 있으니 그렇다.

그러나 닥쳐온 현실 앞에서는 다른 모습이 되는 우리들을 한 번 되돌아보며, 나를 나무란다. 그저 감염되지 않을 것이라고 머릿속으로는 알고 있지만 실제로 내 앞에 에이즈라는 병을 갖고 있는 사람을 보게 된다면, 나 역시 머리와는 다르게 행동할 것이라는 나만의 추측이 자리잡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푸른 알약’을 집어 삼키는 그들을 보면서 나의 인식틀은 종전과는 조금 다르게 나은 방향으로 가고 있다. 그래서 결국은 이러한 만화가 필요했던 게 아닐까. 쉽게 다가갈 수 있는 매체를 통해 쉽게 다가오지는 않는 사회적 인식을 조금은 다른 방향으로 틀어버릴 수 있을 테니까.

지은이 자신의 ‘러브 스토리’를 솔직하게 그린 만화병에 대한 장황한 지식을 늘어놓기에는 나 또한 많이 아는 것이 없다. 언제나 많이 안다고 해서 그대로 행동할 수는 없는 것과 반대로, 많이 알지 못한다고 해서 잘못된 방향으로만 간다고 할 수는 없다. 하지만, 정확한 인식과 정보를 통해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갈 수만 있다면 그렇게 하고 싶다. 에이즈에 대해 많이 알아가고, 불치병이라는 사회적인 통념 또한 없애버리고 싶은 게 우리 모두의 바람일 테니 말이다.

그럼에도 언제나 하나의 사고에는 찬반이 엇갈리게 마련이고, 서로 반대 입장의 두 주장 또한 각기 설득력이 있다. 아무튼 그 논란을 조금이나마 잠재울 수 있는 건 아무래도 에이즈와 함께 살고 있는 그들 약자의 입장을 가장 잘 대변하여 그들이 사회에서 두려움 없이 살 수 있도록 하는 길이 최선이지 싶다. 그 바탕에 깔린 원인과 결과적인 모습을 완벽하게 제거할 수 없을지는 모르지만 힘든 과정을 살아나가고 있는 그들에 대한 차별과, 다른 것을 틀리게 바라보는 우리의 색안경을 조금은 지울 수 있지 않을까. 조금은 더 투명하게 그들을 바라볼 수 있지 않을까, 라고 되묻고 싶어진다.

결국 이 만화가 ‘그들’ 이야기를 조금은 더 현실적으로, 그리고 현실적으로 다가온다면 조금 더 구체적으로 그려준 것은 아닐지. 자라나는 아이들뿐 아니라, 성인이지만 제대로 알지 못하고 있는 어른들을 위해 이러한 만화가 더 쉽게 다가오면 우리는 ‘그들’을 전보다는 더 가까이 대할 수 있을 것이다. 바이러스가 몸 안에 아예 존재하지 않을 그날을 위해, 푸른 알약을 삼키면서.

오늘의 책을 리뷰한 ‘레몬에서’님은
슬며시 들어온 ‘책’이라는 존재를 영원히 끌어안고 싶은, 그리고 방황하는 23살. 지나치게 자유로워지고 싶어 하는 존재. http://blog.naver.com/aqua2042
이제, 우리는 처음의 흥분과 의심의 고비들을 모두 넘겼다 - 책 속 밑줄 긋기

이따금 난 궁금해지곤 한다. 아이의 인생이 어떤 모습일지…, 사춘기는 어떨지… 대인관계에서 자신이 다른 사람들과 다르다는 걸 아이가 어떻게 받아들일지… 아이의 사랑과 성생활은 어떤지… 삶의 기쁨과 원대한 꿈은 갖게 될지…, 그리고 또… 쯧쯧… 운명이란 말을 누구보다 싫어하는 내가 또 미래를 궁금해하다니 나도 이제 정말 지쳤나 보다. (88~89쪽)

되돌아보면 희미하면서도 끊임없는 기쁨과 행복이 느껴지는 듯하다. 하지만 이것은 크고 작은 일련의 고비들을 꿋꿋이 이겨낸 까닭이라는 걸 난 알고 있다. 또 지금 이 관계가 과거와 관련되어 있다는 것도 알고 있다. 과거는 지금도 여전히 우리에게 영향을 미치고 있고, 때로는 예기치 못한 삶의 리듬을 받아들이도록 강요하기도 한다. 변함없이. (130쪽)

한 인간으로서 그가 날 감동시키는 이유는 바로… 성마르고 다혈질이지만 능력이 뛰어나고… 전혀 표시나지 않게 내 삶을 변화시킨, 아니 적어도 삶의 방향을 바꿔놓은 사람이기 때문이다. (143쪽)

시원한 필치와 명료한 연출로 유명한 작가, 프레데릭 페테르스(Frederik Peeters)
프레데릭 페테르스(Frederik Peeters)
1974년 스위스 제네바에서 태어났다. 제네바의 ESAA(응용미술전문학교)에서 시각 커뮤니케이션을 전공했으며 학교 졸업 후 출판사와 신문사에서 포스터, 삽화 등을 담당했다. 그러던 중 제네바의 만화 서점에 자주 드나들다가 알게 된 친구들과 함께 “모두가 모든 일을 하는”, 전혀 분업화되지 않은 시스템의 독립적인 만화출판사 아트라빌(Atrabile)을 설립했고 1997년 첫 만화책 <치즈 잼>을 출간했다. 자전적인 이야기부터 SF, 아동물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장르에서 현실과 이야기 사이를 넘나들며 즐겁게 작업 중이다.